2026. 8. 26. 15:09ㆍ한약재 올바르게 알기
상사(相使)의 현대적 의미 — 다른 약이 주약의 흡수와 작용을 도울 수 있을까?
1.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겼을까?
한약에서 “이 약이 저 약을 돕는다”는 말을 들으면 조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같은 효과를 하나 더 보태 준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한약의 힘을 다른 약이 강하게 만든다는 뜻일까요?
전통 본초학에는 실제로 한 약이 중심이 되고 다른 약이 그 작용을 돕는 상사(相使)라는 배합 개념이 있습니다. 옛사람은 장상피세포도, 막 투과도도, 생체이용률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관계를 따로 구분했을까요?
현대 약리학에서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약재가 주된 약재의 용출, 장 투과, 체내 노출 또는 별도의 약리 경로를 바꾸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2. 전통 본초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했을까?
상사(相使)는 성질과 작용이 완전히 같은 두 약을 단순히 더한다는 뜻과는 다릅니다. 중심 역할을 하는 약이 있고, 다른 약이 그 작용을 도와 배합의 목적을 이루는 관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주된 일을 하는 약 + 그 일을 잘하도록 거드는 약”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使는 다른 약의 작용을 이끌거나 돕는다는 전통적 의미를 담습니다.
다만 상사라는 전통 개념 전체가 하나의 현대 약리 기전으로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약쌍마다 실제 작동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3. 첫 번째 약재에는 어떤 성분이 있을까?
상사를 현대적으로 생각해 볼 사례로 황기뿌리(황기)와 당귀의 배합을 볼 수 있습니다. 황기의 전문 생약명은 Astragali Radix입니다.
황기에는 astragaloside IV 같은 사포닌과 calycosin, formononetin 같은 isoflavonoid 계열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calycosin과 formononetin은 황기-당귀 배합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분석된 지표 성분입니다. 당귀보혈탕의 화학 분석에서도 사포닌·플라보노이드·유기산 등 여러 성분이 함께 확인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황기의 작용을 특정 성분 하나로 환원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황기는 여러 성분을 포함한 생약이고, 실제 처방 연구도 대부분 복합 추출물 수준에서 진행됐습니다.
4. 두 번째 약재에는 어떤 성분이 있을까?
당귀뿌리(당귀)의 전문 생약명은 Angelicae Sinensis Radix입니다. 대표적인 연구 성분으로 ferulic acid와 ligustilide가 있습니다.
특히 ferulic acid는 황기와의 배합 연구에서 눈여겨볼 성분입니다. 황기와 당귀를 함께 사용한 당귀보혈탕 연구에서는 ferulic acid, calycosin, formononetin 등이 주요 화학 지표로 분석됐습니다.
그렇다고 “당귀의 역할은 ferulic acid 하나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체 당귀 추출물에는 여러 성분이 함께 존재하므로, 단일성분 연구와 생약 전체의 작용을 구분해야 합니다.
5. 두 약재가 만나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여기서 상사를 현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옵니다. 약이 장에서 혈액으로 들어가려면 장벽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때 성분이 장벽을 얼마나 잘 지나가는지를 보는 개념이 막 투과성(membrane permeability)입니다. 문을 얼마나 쉽게 통과하느냐를 측정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2012년 Caco-2 세포 단층을 이용한 연구에서는 당귀 추출물이 함께 있을 때 황기 유래 calycosin과 formononetin의 막 투과성이 증가했습니다. 연구진은 당귀의 ferulic acid가 이 변화에 관여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Caco-2는 사람의 장 흡수를 모사하는 세포실험 모델입니다. 따라서 이 결과만으로 실제 사람에게서 두 성분의 혈중농도나 임상효과가 같은 방식으로 증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6. 현대 약리학으로 보면
황기 → calycosin·formononetin → 당귀 추출물/ferulic acid의 영향 → 장상피 막 투과 증가 → 황기 성분의 체내 이용 가능성 증가 → 약리작용 변화 가능 → ‘주약을 돕는다’는 상사(相使)의 한 가지 현대적 해석
즉 “돕는다”는 말은 반드시 같은 수용체를 함께 자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약이 주된 약의 성분을 더 잘 녹게 하거나, 장벽을 통과하는 정도를 바꾸거나, 별도의 약리 경로에서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상사를 단순한 “효과 더하기”보다 약력학적 보완과 약동학적 지원이 포함될 수 있는 전통적 관계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7. 연구에서는 실제로 무엇이 관찰됐을까?
당귀보혈탕은 황기와 당귀로 구성된 비교적 단순한 복합 처방이라 두 약재의 관계를 연구하기 좋은 모델입니다. 화학 분석에서는 함께 달인 탕액의 성분 구성이 각 약재의 개별 물 추출물을 단순히 합한 것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또 쥐에게 당귀보혈탕을 경구 투여한 대사체 연구에서는 혈장과 담즙에서 다양한 원성분과 대사체가 검출됐습니다. 이는 실제 체내에서는 “원래 약재에 들어 있던 성분”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흡수 뒤 대사된 형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현재 근거의 핵심은 성분분석, 세포 투과실험, 동물 대사 연구입니다. 상사라는 전통 범주 자체를 사람 대상 임상시험에서 분자 수준으로 입증한 것은 아닙니다.
8.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
가장 큰 빈칸은 사람에서의 확인입니다. 당귀의 어떤 성분들이 어느 수송체를 통해 황기 성분의 흡수를 얼마나 바꾸는지, 그 변화가 실제 혈중 노출과 임상효과까지 이어지는지는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Caco-2에서 막 투과성이 증가했다는 결과를 곧바로 “사람의 생체이용률이 증가했다”고 바꾸어 표현하면 안 됩니다. CYP 대사효소, 장내미생물, 실제 사람에서의 수송체 변화 역시 이 약쌍의 상사를 설명하는 확정 기전으로 제시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9. 전통 설명과 현대 설명을 비교하면
전통 본초학은 먼저 결과를 관찰했습니다. 어떤 약을 중심으로 다른 약을 배합했을 때 원하는 작용이 더 잘 나타나는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상사라는 관계로 정리했습니다.
현대 약리학은 반대 방향에서 접근합니다. 어떤 성분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함께 추출했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장벽 투과와 대사 과정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단계별로 추적합니다.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하면, 상사는 “보조 약재가 주된 약재의 성분 노출 또는 별도의 약리 경로를 조절하여 전체 작용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는 배합 관계”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상사를 현대 용어 하나와 1:1로 치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10. 핵심 요약
- 상사(相使)는 중심 약재의 작용을 다른 약재가 돕는다는 전통 배합 개념입니다.
- 현대적으로는 용출, 막 투과, 흡수와 약리 경로의 보완이 후보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 황기-당귀 연구에서는 당귀 추출물이 황기의 calycosin과 formononetin 막 투과를 높이는 현상이 Caco-2 세포에서 관찰됐습니다.
- ferulic acid가 관여할 가능성이 제시됐지만 사람의 임상효과까지 입증한 결과는 아닙니다.
- 옛사람이 결과에서 배합 관계를 찾았다면 현대 연구는 성분과 약동학에서 그 결과를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근거 수준: B
성분분석, Caco-2 장상피 모델과 동물 대사 연구 등 직접적인 기전 단서가 있지만, 사람에서 상사의 임상적 의미를 확정할 수준의 직접 근거는 부족합니다. 따라서 세포·동물·탕전화학 기전근거에 해당하는 B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A등급이라 하더라도 임상효과의 완전한 입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성 주의: 이 글은 한약 배합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학술·교육용 콘텐츠입니다. 특정 질환의 치료나 개인별 한약 배합·복용을 권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다른 의약품을 복용 중이라면 한약재와의 상호작용 가능성을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참고자료
- Quality Control of Danggui Buxue Tang by 1H-NMR Metabolic Profiling. 2014.
- Compatibility Study of Danggui Buxue Tang on Chemical Ingredients, Angiogenesis and Endothelial Function. 2017.
다음 글 예고: 독이 되는 약을 다른 약이 정말 중화할까요? 다음 글에서는 상외(相畏)와 상살(相殺)을 반하와 생강의 자극성·독성 연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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