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6. 12:33ㆍ한약재 올바르게 알기
칠정 배합이론을 현대 약리학으로 다시 읽다
1.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겼을까?
한약을 두 가지 이상 함께 쓰면 흔히 “효과를 더하려고 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통 본초학은 배합 결과를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함께 썼을 때 작용이 강해지기도 하고, 한쪽 약을 돕기도 하며, 반대로 약효가 약해지거나 독성이 문제가 되는 관계도 따로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옛사람은 사포닌이나 알칼로이드도 몰랐고, 장 흡수율이나 P-gp 같은 수송체도 측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약의 조합을 이렇게 세분했을까요?
핵심은 관찰의 방향에 있습니다. 옛사람은 분자를 먼저 본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분류했습니다. 현대 약리학은 반대로 성분, 탕전 과정, 흡수, 대사, 분자표적을 추적하면서 그 결과가 왜 나타났는지를 설명하려 합니다. 이것이 칠정(七情)을 현대적으로 읽을 때 출발점입니다.
2. 전통 본초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했을까?
칠정(七情)은 약재를 단독 또는 함께 사용할 때 나타나는 관계를 일곱 가지로 나눈 개념입니다. 단행(單行)은 한 약을 단독으로 쓰는 것이고, 상수(相須)와 상사(相使)는 서로 돕거나 한쪽 약의 작용을 보조하는 관계입니다. 상외(相畏)와 상살(相殺)은 한 약의 좋지 않은 작용을 다른 약이 줄이는 관계를 서로 다른 입장에서 표현합니다. 상오(相惡)는 본래 작용이 약해지는 관계이고, 상반(相反)은 함께 사용할 때 좋지 않은 반응이 커질 수 있다고 본 관계입니다. 이 분류는 고전적으로 《신농본초경》 계통의 배합 이론과 연결되며, 현대 문헌에서도 약재 간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전통적 틀로 다뤄집니다.
3. 첫 번째 축: 약 하나에는 어떤 성분이 있을까?
먼저 단행부터 현대적으로 보겠습니다. 인삼뿌리(인삼)의 생약명인 Ginseng Radix에는 Rg1, Re, Rb1, Rb2, Rc, Rd 같은 여러 ginsenoside와 다당체 등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통에서 말하는 “약 하나”는 현대 의약품의 단일 활성성분 한 개와 같지 않습니다. 하나의 생약 안에서도 여러 성분이 서로 다른 표적과 대사경로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여러 성분이 여러 표적에 작용한다는 뜻의 다성분·다표적 작용(polypharmacology)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삼뿌리 → 여러 ginsenoside와 기타 성분 → 서로 다른 흡수·대사 → 여러 분자표적 → 최종 약리작용
4. 두 번째 축: 약을 하나 더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배합에서는 새로운 변수가 생깁니다. 두 성분이 같은 수용체를 자극해서 효과가 더해질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황기뿌리(황기)의 생약명인 Astragali Radix에는 calycosin, formononetin, astragaloside류 등이 있습니다. 당귀뿌리(당귀)의 생약명인 Angelicae Sinensis Radix에는 ferulic acid와 ligustilide 등이 있습니다.
황기와 당귀를 사용한 당귀보혈탕 연구에서는 당귀 추출물이 황기 유래 calycosin과 formononetin의 장상피 세포막 투과를 높이는 현상이 Caco-2 세포 모델에서 관찰됐습니다. ferulic acid가 이 변화에 관여하는 후보 성분으로 제시됐습니다. 다만 이것은 배양된 장상피 모델의 결과이며, 사람의 실제 흡수량이 같은 정도로 증가한다고 확정한 임상시험은 아닙니다.
5. 두 약재가 만나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현대 약리학에서는 크게 두 층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약이 몸속에서 얼마나 흡수되고 대사되는지를 보는 약동학(pharmacokinetics, PK)입니다. 쉽게 말하면 몸이 약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몸에 도달한 성분이 수용체, 효소, 이온통로, 염증 신호 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는 약력학(pharmacodynamics, PD)입니다. 이것은 약이 몸에 무엇을 하는지를 보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상수와 상사가 항상 “혈중농도가 올라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오는 항상 “성분이 파괴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흡수가 달라질 수도 있고, 서로 다른 표적이 보완될 수도 있으며, 탕전 과정에서 용출이나 침전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 배합 연구도 물리화학적 변화, 약동학, 약력학을 구분해 살펴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6. 현대 약리학으로 보면
약재 A + 약재 B
↓
탕전 중 용출·화학적 상호작용 또는 장 흡수 변화
↓
일부 활성성분의 체내 노출 증가·감소 가능
↓
분자표적에서 상승·보완·길항 또는 독성 변화
↓
전통에서 관찰한 상수·상사·상외·상살·상오·상반의 결과와 일부 연결 가능
중요한 점은 마지막의 “연결 가능”입니다. 전통 분류 하나가 현대의 특정 수송체나 효소 하나와 1:1로 대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약쌍에서도 배합비, 탕전법, 법제, 실험모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7. 연구에서는 실제로 무엇이 관찰됐을까?
현대 연구에서는 칠정과 관련된 현상을 여러 수준에서 관찰하고 있습니다. 앞서 본 황기·당귀 연구처럼 Caco-2 세포에서 막 투과성이 달라지는 사례가 있고, 다른 약쌍에서는 동물 약동학 연구를 통해 AUC나 Cmax 같은 체내 노출 지표가 변하는 사례도 보고됩니다.
반면 칠정 전체를 사람 대상 임상시험으로 검증한 자료는 부족합니다. 상반으로 전해진 약쌍조차 현대 실험 결과가 연구 조건에 따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이를 정리한 문헌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8.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
가장 큰 문제는 복합성입니다. 생약 하나에도 여러 성분이 들어 있고, 두 약을 같이 달이면 수십에서 수백 개의 화학성분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다고 해서 특정 단일성분 하나를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습니다.
또 시험관에서 관찰된 흡수 변화가 동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동물에서 혈중농도가 변했다고 해서 사람의 임상효과나 독성이 같은 방향으로 변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 연구는 이런 간격을 하나씩 좁혀가는 단계입니다.
9. 전통 설명과 현대 설명을 비교하면
전통 본초학은 먼저 결과를 봤습니다. “함께 쓰니 더 잘 작용한다”, “다른 약이 독성을 누그러뜨린다”, “같이 쓰니 본래 작용이 약해진다” 같은 반복된 경험을 상수·상사·상외·상살·상오·상반이라는 관계로 정리했습니다.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하면, 약재의 배합은 성분의 용출과 흡수, 체내 노출, 대사, 분자표적의 반응을 동시에 바꿀 수 있는 복합적인 약물 상호작용입니다. 현대 과학이 칠정을 이미 완전히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전통 배합을 단순한 비과학적 규칙으로 치부하기도 어렵습니다. 현재의 연구는 과거에 관찰된 결과가 어떤 조건에서 재현되고, 그때 어떤 분자와 약동학적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10. 핵심 요약
- 칠정은 약을 단독 또는 배합했을 때 나타나는 관계를 경험적으로 분류한 전통 이론입니다.
- 현대 약리학에서는 이를 약력학적 상승·길항, 흡수와 대사 변화, 독성 조절 등으로 나누어 연구할 수 있습니다.
- 한 생약 자체도 여러 성분을 가진 복합계이므로 단행조차 단일성분 치료와 같지 않습니다.
- 세포·동물 수준의 기전 연구는 축적되고 있지만 칠정 전체의 사람 대상 임상 검증은 아직 부족합니다.
- 전통은 결과에서 규칙을 만들었고, 현대 연구는 성분과 기전에서 그 결과를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근거 수준: B
칠정 전체를 하나의 현대 기전으로 검증한 것은 아니지만, 약재 배합에 따른 탕전 화학, 장 투과성, 약동학, 약력학 변화를 보여 주는 세포·동물 연구와 직접 약쌍 연구가 축적돼 있습니다. 다만 개별 관계와 약쌍의 근거 수준은 A부터 D까지 크게 다릅니다. B 등급은 사람에서 임상효과와 안전성이 완전히 입증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안전성 주의
이 글은 전통 본초학과 현대 약리학 연구를 설명하기 위한 학술·교육용 내용입니다. 독성 약재나 상반 약재를 개인이 직접 배합하거나 복용해 보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전통적 배합 분류만으로 실제 복용의 안전성을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참고자료
- Study on incompatibility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s. PubMed PMID 26281612.
- 《신농본초경》. 칠정 배합 관계의 전통적 기원 문헌. 현대 리뷰에서도 칠정의 초기 기록과 연결해 설명합니다.
다음 글 예고
2번에서는 “한약 두 개를 섞으면 정말 효과가 세질까?”라는 질문으로 상수(相須)를 다룹니다. 단순한 시너지뿐 아니라 약효는 커지는데 혈중농도는 오히려 달라질 수 있는 이유까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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