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씨와 홍화를 같이 쓰면 혈액이 정말 덜 끈적해질까?
복숭아씨와 홍화를 같이 쓰면 혈액이 정말 덜 끈적해질까?
'어혈을 푼다'는 말을 혈액점도·혈소판·응고검사로 번역해 보니
혈액순환에 좋다는 약재를 먹으면 정말 피가 묽어질까요?
이 표현은 익숙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애매합니다.
혈액의 흐름은 단순히 묽다와 끈적하다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적혈구가 차지하는 비율, 혈장의 점도, 혈소판이 서로 달라붙는 정도, fibrinogen 농도, 혈액이 응고되는 시간 등이 모두 영향을 줍니다.
이 복잡한 현상을 실제로 한꺼번에 측정한 약재 조합이 있습니다.
바로 복숭아씨(도인·桃仁, Persicae Semen)+홍화 꽃(홍화·紅花, Carthami Flos)입니다.
Liu 등은 2012년 Journal of Ethnopharmacology에서 도인+홍화 약쌍뿐 아니라 도인의 대표성분 amygdalin, 홍화의 대표성분 hydroxysafflor yellow A(HSYA), 두 성분의 병용까지 같은 동물모델에서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Amygdalin과 HSYA는 서로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들어 있는 도인+홍화 전체 약쌍에서는 혈액점도, 혈소판 응집, 응고계가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이것은 전통 배합에서 말하는 같은 방향의 약을 함께 쓰는 이유를 현대적으로 살펴보기 좋은 사례입니다.
1. 도인과 홍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대표성분부터 다르다
도인은 우리가 먹는 복숭아 열매의 과육이 아니라 복숭아씨 속 씨알을 약재로 사용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수용성 지표성분 가운데 하나가 amygdalin입니다.
Amygdalin은 cyanogenic glycoside, 즉 분해조건에 따라 cyanide 계열 물질이 생성될 수 있는 청산배당체입니다.
따라서 도인의 작용을 단순히 amygdalin의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amygdalin 자체도 안전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물질입니다.
실제로 "복숭아씨"라는 이름 때문에 식품처럼 여기고 편하게 여쭤보시는 분들이 있어서, 도인은 다른 약재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설명하는 편입니다.
홍화는 잇꽃의 꽃을 약재로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성분 가운데 하나가 hydroxysafflor yellow A, HSYA입니다.
HSYA는 quinochalcone C-glycoside 계열의 색소성 화합물로 홍화의 심혈관·뇌혈관 연구에서 많이 측정되는 지표성분입니다.
즉 이 조합은 도인 → amygdalin 계열, 홍화 → HSYA 계열처럼 화학구조가 전혀 다른 두 성분군을 함께 사용하는 배합입니다.
2. 2012년 실험은 '어혈'을 일부러 만들어 놓고 비교했다
Liu, Duan, Tang 등은 2012년 Journal of Ethnopharmac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쥐를 7개 군으로 나누었습니다.
대조군과 혈어 모델군 외에 도인+홍화 약쌍, amygdalin, HSYA, amygdalin+HSYA, aspirin 군을 두었습니다.
각 군은 8마리씩이었고, 약물은 12시간 간격으로 총 7회 경구투여했습니다.
연구진은 adrenaline hydrochloride를 두 차례 투여하고 그 사이 쥐를 찬물에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급성 혈액유변학 이상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투여 다음 날 혈액을 채취해 whole blood viscosity, plasma viscosity, packed cell volume, PT, APTT, TT, fibrinogen, platelet aggregation 등을 측정했습니다. Liu L et al.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12;139(2):381-387. DOI 10.1016/j.jep.2011.11.016.
즉 전통적인 어혈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측정한 것이 아니라, 현대 혈액학 지표 여러 개로 분해해서 비교한 것입니다.
3. 도인+홍화는 '피를 묽게 했다'보다 복잡하게 작용했다
Liu 등의 2012년 연구에서 도인+홍화 약쌍은 혈어 모델군에 비해 전혈점도(WBV)를 낮추고, 혈장점도(PV)를 낮추고, 적혈구용적률에 해당하는 PCV를 낮추는 방향을 보였습니다.
동시에 응고계에서는 thrombin time(TT)이 길어지고, activated partial thromboplastin time(APTT)이 길어지고, prothrombin time(PT)도 길어졌으며, fibrinogen(FIB)은 감소했습니다.
혈소판 응집 역시 감소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피가 묽어졌다고 표현하면 여러 현상을 하나로 뭉개 버리게 됩니다.
실제로는 혈액 자체의 점도 변화, 혈소판이 서로 뭉치는 정도 변화, 응고인자를 이용해 fibrin clot을 만드는 과정 변화가 동시에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활혈이라는 말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려면 최소한 hemorheology + platelet function + coagulation이라는 세 축을 따로 봐야 합니다.
4. 더 중요한 것은 amygdalin과 HSYA가 서로 다른 일을 했다는 점이다
전체 약쌍 결과보다 주목할 부분은 각각의 대표성분을 따로 사용했을 때입니다.
Liu 등의 2012년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연구에서 HSYA는 전혈점도와 혈장점도를 유의하게 낮췄지만 혈장 응고검사에는 뚜렷한 영향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반면 amygdalin은 혈장점도를 낮추고 APTT를 연장하고 fibrinogen을 낮췄지만 전혈점도에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두 성분 모두 혈소판 응집을 억제하는 방향을 보였습니다.
즉 홍화의 HSYA는 혈액 흐름과 점도 쪽에 상대적으로 강한 변화를, 도인의 amygdalin은 혈장점도와 일부 응고계 변화를 만드는 식으로 역할이 완전히 같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는 전통 배합이론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입니다. 두 약재가 같은 효능분류에 들어간다고 해서 같은 표적을 똑같이 두 번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5. 두 성분을 합치자 일부 지표에서는 실제 상승효과가 나타났다
Liu 등은 amygdalin과 HSYA를 각각 투여한 군뿐 아니라 amygdalin+HSYA 병용군도 별도로 두었습니다.
연구진은 두 대표성분이 도인+홍화 약쌍의 주요 혈액유변학적 효과에 기여하며, 특히 혈장점도 감소와 혈소판 응집률 감소 같은 지표에서 상승작용을 나타냈다고 평가했습니다. Liu L et al.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12;139(2):381-387.
정리하면 도인의 amygdalin은 혈장점도·APTT·fibrinogen·혈소판 응집 쪽에, 홍화의 HSYA는 전혈점도·혈장점도·혈소판 응집 쪽에 작용하면서, 서로 겹치는 부분과 서로 다른 부분이 함께 혈액유변학과 응고계에 더 넓은 변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1+1과 다른 지점입니다. 배합효과는 반드시 하나의 수용체에서 시너지가 발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리단계를 분담하면서 최종적으로 같은 치료방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6. 그렇다면 이것이 전통적인 상수의 과학적 모습일까?
도인과 홍화는 같은 처방에서 반복적으로 함께 사용되는 대표적인 활혈 약쌍입니다.
Liu 등의 논문에서는 도인+홍화가 도홍사물탕에서 3:2의 질량비로 사용되는 조합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혈부축어탕 등 여러 전통 처방에서도 두 약재가 함께 등장합니다.
전통적인 배합이론의 관점에서는 같은 치료방향을 가진 두 약이 서로 효과를 강화하는 상수적 구조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으로는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도인+홍화는 서로 다른 대표성분(amygdalin+HSYA)이 혈액점도라는 공통축, 응고계라는 보완축, 혈소판이라는 공통축을 통해 여러 지표를 동시에 조절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주약을 돕는다거나 같은 약효를 강화한다는 표현을 현대적으로 번역하면 같은 표적을 두 번 자극한다기보다, 최종 치료목표와 관련된 서로 다른 생리과정을 동시에 조절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7. 하지만 혈액순환 효과가 강해졌다는 말과 출혈위험이 높아졌다는 말은 같은 문장이 아니다
여기서 반드시 선을 그어야 합니다.
2012년 쥐 연구에서는 도인+홍화 병용으로 PT·APTT·TT가 길어지고 fibrinogen과 혈소판 응집이 감소했습니다.
이런 변화만 보면 사람에서도 출혈위험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동물 혈어 모델의 응고검사 변화가 실제 사람의 임상적 출혈 발생률을 그대로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즉 동물에서 APTT 연장이 곧 사람에게 출혈이 확정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이런 자료가 있는데 사람에게 아무런 상호작용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항응고제나 항혈소판제를 사용 중인 사람에게 도인·홍화 배합을 적용할 때는 병용 가능성을 임상적으로 검토해야 할 근거는 있지만, 이 동물실험만으로 위험도를 숫자로 예측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8. 임상에서 나는 '피를 묽게 하는 약'이라고만 설명하지 않는다
임상에서 환자에게 도인과 홍화를 설명해야 한다면 저는 피를 묽게 해 주는 약이라고만 표현하지 않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혈액점도와 혈소판 응집, PT·APTT 같은 응고지표는 서로 다른 생리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aspirin, clopidogrel 같은 항혈소판제나 warfarin, DOAC 같은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상황이라면 전통적으로 혈행을 개선한다고 알려진 약재라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추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도인에는 별도의 안전성 문제도 있습니다.
He 등은 2020년 Journal of Ethnopharmacology*의 amygdalin 독성학 리뷰에서 amygdalin이 경구섭취 후 효소와 장내환경에 의해 분해되면서 hydrogen cyanide가 생성될 수 있고, 이것이 독성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정리했습니다. He XY et al.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20;254:112717. DOI 10.1016/j.jep.2020.112717.
따라서 도인을 복숭아씨니까 식품처럼 생각하거나, 연구에 사용된 amygdalin을 직접 복용하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9. 이 연구가 보여 준 것보다 보여 주지 못한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도인+홍화 연구에는 장점이 분명합니다.
전체 약쌍과 단일 대표성분, 두 대표성분의 조합, aspirin까지 같은 실험에서 비교했습니다. 혈액점도뿐 아니라 응고검사와 혈소판까지 한꺼번에 측정했습니다.
하지만 한계도 명확합니다.
첫째, 핵심 직접 연구는 쥐의 급성 혈어 모델입니다. 사람의 만성 심혈관질환이나 혈전질환을 그대로 재현하는 모델이 아닙니다.
둘째, 도인과 홍화에는 amygdalin과 HSYA 외에도 많은 성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도인+홍화의 전체 효과를 amygdalin+HSYA의 효과와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셋째, 2012년 연구는 두 성분의 혈중 AUC나 Cmax가 병용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석한 약동학 연구가 아닙니다. 즉 현재 확인된 핵심은 약력학적 상호보완입니다. 도인과 홍화를 같이 쓰면 amygdalin이나 HSYA의 흡수가 얼마나 변하는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넷째, 혈소판 응집이나 응고시간 변화가 사람의 임상효과 또는 실제 출혈위험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약쌍의 근거는 A에 가까운 전임상 직접근거로 평가할 수 있지만 사람 임상효과가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정리됩니다
결국 도인과 홍화의 배합을 현대적으로 보면 단순히 활혈약 두 개를 겹쳐 놓은 것이 아닙니다. 한쪽 성분은 혈액의 흐름과 점도에 더 강하게 관여하고, 다른 쪽은 응고계까지 영향을 주면서, 두 약재가 혈소판이라는 공통지점에서도 만나는 구조입니다.
전통적으로 같은 방향의 약을 함께 사용한다는 배합이 현대 약리학에서는 공통표적의 중첩 + 서로 다른 생리기능의 역할분담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문헌
- Liu L, Duan JA, Tang Y, Guo J, Yang N, Ma H, Shi X. Taoren-Honghua herb pair and its main components promoting blood circulation through influencing on hemorheology, plasma coagulation and platelet aggregation.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12;139(2):381-387. DOI: 10.1016/j.jep.2011.11.016. PMID: 22123200.
- He XY, Wu LJ, Wang WX, Xie PJ, Chen YH, Wang F. Amygdalin - A pharmacological and toxicological review.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20;254:112717. DOI: 10.1016/j.jep.2020.112717. PMID: 32114166.
- Jaswal V, Palanivelu J, Ramalingam C. Effects of the Gut microbiota on Amygdalin and its use as an anti-cancer therapy: substantial review on the key components involved in altering dose efficacy and toxicity. Biochemistry and Biophysics Reports. 2018;14:125-132. DOI: 10.1016/j.bbrep.2018.04.008.
(이번 글의 핵심 결론에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원문을 직접 대조하지 못했으니 최종 게시 전 한 번 더 확인 부탁드립니다.)
다음 편 — 23번
다음 글에서는 혈액에서 장으로 이동합니다.
탱자 성숙 열매(지각)+후박나무 껍질(후박)입니다.
이 약쌍은 지금까지 다룬 조합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같이 쓰면 무조건 효과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용량에 따라 위장운동을 촉진하기도 하고 오히려 억제하기도 하는 양방향 반응이 연구됐기 때문입니다.
23번에서는 지각의 naringin·neohesperidin 계열과 후박의 honokiol·magnolol을 중심으로, 한약 배합에서 왜 약재의 종류뿐 아니라 얼마나 넣었는가가 약효의 방향 자체를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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